레트로 열풍에 ‘윈도우 95’ 노트북도 나왔다

박진수 에디터 2024.06.29 조회수

1970년대 디자인으로 인기를 끈 레트로 선풍기 (출처 : 신일전자)

최근 구형 전자제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부쩍 늘었다. 2022년 국내 한 가전제품 제조사는 1970년대 디자인을 되살린 레트로(복고풍) 선풍기를 출시했다. 당시 인기는 예상을 한참 웃돌았고, 제조사는 그 뒤에도 해마다 다양한 레트로 선풍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LP 플레이어를 닮은 스피커, 카세트 플레이어를 닮은 스마트폰 케이스, 고전 게임을 탑재한 오락 기계 등 레트로 스타일 전자제품이 시중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개중에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실제 사양까지 구형인 전자제품도 있다. 필름 카메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진을 촬영하면 디지털 파일로 저장되지 않아 필름을 현상해야 하는데, 이런 불편함도 옛 감성이라며 일부러 찾는 소비자도 종종 나타난다.

포켓 386 (출처 : Hand386)

이렇듯 ‘레트로’에 열광하는 현상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졌다. 그런 와중 중국 전자제품 제조사 ‘핸드(Hand) 386’이 발 빠르게 레트로 유행에 어울릴 만한 노트북을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톰스하드웨어, 릴리퓨팅, 아르스테크니카 등 해외 IT 매체는 핸드 386이 윈도우 95를 탑재한 레트로 노트북 ‘포켓(Pocket) 386’을 출시했다고 6월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하드웨어까지 옛 사양…진짜배기 레트로 노트북 ‘포켓 386’

기존에도 가끔 윈도우 XP나 98 등의 구형 운영체제를 탑재한 컴퓨터가 시중에 나왔다. 이런 제품은 대부분 최신 하드웨어 부품을 탑재하고 가상 머신으로 구형 운영체제를 구동하는 구조를 채택했다. 구형 운영체제는 최신 하드웨어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상 사양을 설정한 구동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포켓 386은 윈도우 3.1 또는 윈도우 95를 그대로 구동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하드웨어 사양도 1990년대 컴퓨터와 동일한 수준으로 갖춘 덕이다.

포켓 386의 주요 사양 (출처 : Hand386)

프로세서는 1990년대 초기 컴퓨터에 주로 탑재한 ‘386 SX’ 기반 임베디드 CPU를 사용했다. 프로세서 동작 클럭은 40MHz, 램(RAM) 용량은 8MB로 최신 컴퓨터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디스플레이 크기는 7인치로 일반적인 노트북보다 훨씬 작다. UMPC(Ultra-Mobile Personal Computer)로 분류될 정도다. 종횡비는 16:9이며 최대 해상도는 800×480인데, OSD 설정을 통해 4:3 비율(해상도 640×480)로 변경할 수 있다. 과거에는 4:3 비율 모니터를 주로 사용했던 점을 고려해 추가한 기능으로 보인다.

포켓 386은 특이하게도 그래픽카드를 교체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CL-GD542X △TVGA9000i △CHIPS F655x5 중에서 원하는 그래픽카드를 장착할 수 있다. 이외에 야마하(Yamaha) YMF262-M 사운드카드, 3.5mm 오디오 출력 단자, CF카드 슬롯, USB A타입 단자도 탑재했다.

형태는 노트북이지만 터치패드는 없다 (출처 : Hand386)

단, USB 단자에는 외부 저장 장치만 연결할 수 있으며 키보드·마우스 같은 기기는 인식하지 못한다. 본체가 워낙 작아 마우스 대신 사용할 만한 터치패드조차 탑재하지 못했다. 대신 키보드의 방향키, 시프트(Shift), 물음표 키를 눌러 마우스 커서를 옮길 수 있게 설계했다. 후면 PS2 단자에 어댑터를 꽂아 구형 키보드나 마우스를 연결할 수도 있다.

실제 사용은 어려워…도스 게임, 구형 제품 연구에 도움 될 듯

가상 머신으로 구형 운영체제를 구동하는 노트북과 달리, 포켓 386은 실제 하드웨어 사양까지 모두 구형이므로 최신 소프트웨어와 게임을 실행하지 못한다. 웹 서핑, 문서 작성, 캐주얼 게임 등 웬만한 저사양 노트북도 가능한 작업이 포켓 386에서는 불가능하다. 소비자가 필요로 할 만한 대부분의 사용 목적에 부적합하다.

포켓 386 투명 하우징 옵션 (출처 : Hand386)

심지어 가격도 비싸다. 포켓 386은 중국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에서 30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럼에도 보도 시점에 벌써 수백 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예스러운 제품을 소장하려는 욕구도 한몫했겠지만, 도스(DOS)나 윈도우 3.1, 윈도우 95 시절 재미있게 했던 게임을 다시 해보고 싶은 사람도 구매할 만하다. 레트로 제품을 다루는 유튜버 ‘레트로TV1(RetroTV1)’은 둠, 울펜슈타인 3D, 커맨더 킨4, 테스트 드라이브3 같은 고전 게임을 이 제품으로 구동한 바 있다.